MYEONG-DONG


명동 [Myeong-dong, 明洞 ]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주택지로 밀집을 이루었고, 일제 강점기 때 충무로 일대를 상업지구로 개발하면서 명동도 점차 상업지구로변모하게 되었다. 1923년 이후부터 명동은 서울의 번화가가 되었고, 그 후 광복과 6·25사변을 전후한 시기에 여전히 서울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다. 광복의 환희, 전후의 허무와 페이소스가 흐르던 이 거리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인들은 명동거리의 다방과 술집 등에 모여 예술과 인생을 논하며 불운하였던 시대의 한과 정을 풀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6·25전쟁 직후 정부가 전재복구재건을 위한 토지계획정리추가지구로 결정한 이후부터이다. 1956년 이후 도시재개발로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고급양잠점, 양화점, 귀금속, 대형 백화점, 각종 사무실, 금융기관의 본사, 쇼핑센터 및 소매전문점들이 밀집되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의 쇼핑 관광지로 애용되어 왔다. 당시에 국립극장과 명동성당·중국대사관·중앙우체국 등 근대건축물과 공공기관이 산재해 있었고 문인들의 집합소였던 여러 다방들은 음악·미술·문학·사진·연극 등 문화와 예술의 무대였다. 그 후 이곳은 점차적으로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하여 소비문화의 중심지, 유흥의 거리로 바뀌어 갔다.
1970년대까지는 서울의 번화가로 대표적인 곳이었으며, 1976년에 3·1고가로의 건설로 저동 1가에서 충무로 2가에 이르는 도로가 5m에서 15m로 크게 확장되면서 현재와 같은 도시형태를 갖추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뒤이어 강남 개발과 함께 영동·반포·여의도 등 부도심의 성장으로 금융기관이 여의도로 이전해 가고 대형백화점과 상가 등이 새로이 조성됨에 따라 명동의 상권과 중심성은 상당히 위축되어 갔다. 특히 압구정동 일대가 새로운 패션 중심지로 등장함에 따라 최신 유행의 산실이라는 명동의 기능은 점차 퇴색되어 갔다.
[네이버 지식백과] 명동 [明洞]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pen : Uni posca pc-3m
paper : Mermaid  394 x 545(mm)


Myeongdong (Hangul: 명동; Hanja: 明洞, literally 'bright cave' or 'bright tunnel) is a dong in Jung-gu, SeoulSouth Korea between Chungmu-roEulji-ro, and Namdaemun-ro. It covers 0.99 km² with a population of 3,409 and is mostly a commercial area, being one of Seoul's main shopping and tourism districts.[1] In 2011, 2012 and 2013, Myeong-dong was listed as the ninth most expensive shopping street in the world.[2][3][4] The area is known for its two historically significant sites, namely the Myeongdong Cathedral and the Myeongdong Nanta Theatre. (From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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